엄마 생각

 

                                                                                                                                              김 희 재

 

 

     친구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흔두 살 되신 어머니는 아무 거동도 못하고 2년 넘게 병원에 누워만 계셨어요.

친구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다 어머니를 모셔놓고 매일 병원을 오가느라 많이 힘들어 했어요.

자식들 건사하느라 동동걸음을 치며 사는 바쁜 일상 속에 어머니까지 끼워 넣으려니

갑절로 벅찼던 것이지요.


   어머니를 여읜 그녀에겐 딸이 하나 있어요.

올해 서른아홉 살 되었지요.

재작년에 결혼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검사했더니 난관이 막혔답니다.

도저히 자연적으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랍니다.

그녀는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난임 치료를 받게 했어요.

딸이 제 손으로 자기 몸에 주사 놓는 것을 힘들어해서

배에다 놓는 호르몬주사도 매일 대신 놓아 주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세 번 만에 간신히 임신이 되었어요.

초음파 사진에 선명하게 찍힌 콩알이 두 개, 소원대로 쌍둥이가 생겼어요.

산모의 나이가 많으니까 이왕이면 한꺼번에 둘을 낳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와 함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축하했지요.

어느덧 임신 12주차에 접어들었어요.


어느 날, 느닷없이 배가 아프고 피도 비친다는 딸의 연락을 받고

친구는 단걸음에 딸네 집이 있는 청주로 달려갔어요.

둘이서 저녁을 먹고 늦게 퇴근하는 사위를 기다리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딸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찾았어요.

얼른 들어가 보니 변기에 시뻘건 핏덩어리가 쏟아져 있었어요.

순간, 유산이 되었나 싶어 가슴이 철렁해서

그녀는 앞뒤 가릴 겨를 없이 맨손으로 그 핏덩이를 건졌어요.

혹시라도 그 속에 아기가 들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살살 더듬어 헤집어 보니

콩알은 없고 그냥 순두부 같았답니다.

그녀는 황급히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발이 허공을 딛는 것처럼 허둥거렸어요.


부랴부랴 초음파검사를 해보니 태아의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 우렁차게 들렸어요.

아가들은 엄마 뱃속에서 무사히 잘 있었어요.

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주치의 선생님이 앞으로 출산일까지 산모는 꼼짝도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어요.

할 수 없이 그녀는 딸을 아예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기로 했어요.


   청주에서 대전으로 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그녀는 전화를 받았어요.

아무래도 어머니가 곧 떠나실 것 같으니 어서 병원으로 오라는 간호사의 다급한 전갈이었어요.

어렵사리 잉태한 새 생명을 지키는 일과

기한이 다 된 생명을 돌려보내는 일이 동시에 터진 겁니다.

그것도 하필 몇 십 년 만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눈발도 거센 토요일에 말입니다.


부랴부랴 딸을 집에다 내려놓고, 그녀는 단숨에 어머니에게 달려갔어요.

이미 청색증이 와서 파래진 어머니의 몸을 깨끗이 씻겨드리고,

얼굴을 어루만져도 아무 반응이 없는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편히 가시라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울면서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금방 돌아가실 것 같던 어머니는 주말을 넘기셨습니다.

혹한에 장례치를 사람들 형편을 봐 주시느라 그랬는지

한파가 조금 누그러진 월요일 오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모시는 중에도 그녀는 잠시도 딸을 내려놓지 못했어요.

상주 노릇하는 짬짬이 집에 가서 딸의 시중을 들어주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그녀에겐 먼 길 떠나신 어머니를 배웅해 드리는 일보다

새 생명을 잘 지켜주는 일이 더 급박했어요.

불과 며칠 사이에 반쪽이 된 그녀가 애처로우면서도 존경스러웠어요.

그녀의 상황을 지켜보며 저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어요.

 

    중환자실에서 호스를 끼고 누워 계시던 그 어머니는 딸의 절박한 사정을 다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변기에 빠진 핏덩이를 맨손으로 건져 헤집어 보던 딸의 간절함을요.

어렵사리 잉태된 생명들을 지키고 싶은 그녀의 절절한 마음이 텔레파시로 전해졌나 봅니다.

출산할 때까지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하는 임산부 구완에 정신없을 딸의 형편을 아시고,

어머니는 남은 명줄 한 가닥을 서둘러 놓으신 것 같습니다.

당신도 평생 본인보다 딸을 먼저 챙기셨던 분이니까요.


지금 가만히 누워서 엄마의 수발을 받고 있는 딸은 그 모든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머리로는 고마워하면서도 지치고 힘들 때면 죄 없는 엄마에게 괜한 짜증도 부리겠지요.

하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에겐 모든 진액을 다 짜내어 줄 겁니다.

제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아이를 위해서 죽을힘을 다할 것입니다.

엄마가 지금 자기에게 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 어느 대학 연구 자료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관심과 사랑을 100으로 볼 때

자식이 부모에게 보내는 마음은 0.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 얘기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내리사랑과 치사랑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말이 정말 어이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름 일리가 있더라고요.

다들 부모에게 진 빚을 부모에게 갚지 못하고 자식에게 대신 갚는 것 같아요.

그래야 종족이 보존되고 이어질 테니까요.

참으로 야속한 섭리입니다.


   환갑이 지나고 자식들도 다 독립하고 나니 오히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더 납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그리워만 할 뿐입니다.

아무것도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100만큼의 사랑을 받고 0.7밖에 돌려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죄스럽습니다.

설령 지금 살아계신다 해도 후회 없이 흡족하게 잘해드릴 자신도 없습니다.

그것이 더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